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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미국을 지배한 “학문 중심 교육과정”(aka.브루너)

별별선생
조회2925추천 02020.02.0405:28

1959년은 당시 학교들의 병폐로 여겨지던 지적인 무목적성에 관해 관심이 높았던 시기이다. 많은 지식의 분야에서 커다란 진전이 있었음에도 이러한 진전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에는 반영되지 못하고 있었다. (……) 스푸트니크 발사 직후 매사추세츠 캠브리지에 있던 나의 동료는 현재 미국이 당면한 커다란 문제는 현대물리학과 수학의 성과가 중등학교 교육과정에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 사회적 과업은 과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나중에는 다른 교과로 (……)

- 브루너, <교육의 과정(The Process of Education)> 일부


 

(스푸트니크 발사가 뭔지 모르시면 일단 ↓이것부터 클릭하시고)

“교육학을 배운 사람이 1957년을 모르면 안 되지.” 대체 1957년에 뭐가 있었기에?


 





아무튼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미국에서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로 하여금 보다 본질적인 과학, 수학 학습을 하게끔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들끓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요청에 따라, 브루너(Jerome Seymour Bruner)는 

1960년 <교육의 과정(The Process of Education)>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며, 


“지식의 구조”라는 개념에 기반을 둔 교육 원리를 제시하였는데요. 

 

이 관점에 따르면, 모든 지식은 각 지식마다의 고유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지식을 이해하는 과정은 그 분야의 학자들이 하는 일이나 어린 학생들이 하는 일이나 근본적으로는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어떤 지식이든지간에, 어떤 연령에 있는 어떤 학습자에게도, 

진짜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자면, 그게 설사 "양자역학의 원리"라고 하더라도 여덟 살짜리 어린 아이에게 이해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지식의 구조를 어떻게 설명하고 표현해내느냐에 따라서 말입니다.


학생들이 지식의 구조를 이해한다면 이해를 더 빠르고 용이하게 할 수 있고,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자연의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해 볼 필요도 없습니다.


브루너에 따르면 교과 내용은 해당 학문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일반적인 개념과 원리인 "지식의 구조"에 따라 구성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과에 담긴 기본 개념은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서 점차 깊이가 깊어지고 폭도 넓어지는 “나선형 교육과정”의 형태를 제시했지요. 


또한 “발견학습”을 강조하는데, 해당 분야의 학자가 그 지식을 다루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아이들이 학습을 하게 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정말로 해당 지식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러한 브루너의 교육과정 이론을 학문의 구조에서 출발한다고 하여 “학문 중심 교육과정”이라고 칭합니다. 


이러한 "학문 중심 교육과정"은 체계화된 지식을 교육 내용으로 선정하기 때문에 보다 양질의 교육을 진행할 수 있고, 

기본 개념 위주의 탄탄한 학습을 강조함으로써 그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새로운 지식을 재생산하게 할 수 있지요. 

또 아이들이 학문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식의 구조 중심으로 교과 내용을 선별하고 조직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교육 내용의 중복과 누락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 그 지식의 구조라는 게 정말 있기는 한 거냐, 하는 비판을 제기해볼 수 있죠. (일견 타당한 말씀 아닙니까)

설사 지식의 구조가 있다 한들, 어린 아이들이 학습하기엔 너무 지나치게 어렵지 않느냐는 비판도 가능합니다. 

또 학문적인 재능을 가진 일부 소수의 학생들에게만 유리하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스푸트니크 쇼크 사태 이후로 엄격한 학문 중심 교육과정을 미국 사회에 실제로 도입해보았으나, 

기대했던 것만큼 과학과 수학을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요즘에도 한국인들이 미국으로 유학 가면 수학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나요? 예전엔 그랬었다는데…)


 

브루너를 위시한 학문 중심 교육과정은 결국 쓰디 쓴 실패를 맛 보게 되고, 

1960년대 스키너(!)라는 대가가 등장하면서, “행동주의 교육과정”에 그 자리를 넘겨주게 됩니다. 



댓글1
지윤영
사회과 교사와 전문성 부분을 공부하던 중, 신사회과 운동의 실패에 대한 부분에 이해가 잘 가지 않았는데, 깔끔하게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2021.05.29 09:0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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