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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무원/특정직공시생 J, 시험치러 가다

별별선생
조회437추천 02018.11.0508:56

군무원 시험 당일, 집에서 출발하기 전까지 계속 책을 붙들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 교재를 덮자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이제 다시 책을 볼 기회는 없다. 수험표와 신분증을 챙겼는지 몇번이나 확인하고 가는 동안에 볼 암기노트를 가방에 넣었다. 이제 진짜 시험을 보러 가야 한다. 주방에 있던 엄마에게 "갔다 올게"라고 말하는데 가슴에서 뭔가 울컥하면서 목소리가 떨려나온다. 잘 다녀오라고 엄마가 말하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뒤돌아보지 못했다.

33살의 나이에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 졸업 후부터 몸이 아파 5년 넘는 시간을 투병생활로 보냈고 그나마 취업 준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게 1년 전쯤이었다. 별다른 자격증도 없고 다른 취준생들에 비해 나이가 많아 사기업 취직이 어려운 내게 공무원은 꽤 괜찮은 직장처럼 보였다. 건강이 좋지 않아 반일제로 일하는 시간제 공무원을 염두에 뒀지만 18년부터 거의 뽑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몇 개월 공부하고서야 알았다. 응시하려했던 직렬과 과목이 겹치고 공부할 과목수가 적은 군무원 시험으로 목표를 바꿨다.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깨어있는 거의 모든 시간을 공부에 쏟았다. 밥을 먹고 공부하고 다시 밥을 먹고 공부하는 똑같은 나날이 반복되었다. 자투리 시간조차 아까웠다. 설거지를 하면서 행정법 mp3강의를 들었고 변기에 앉아서 한자성어를 외웠다. 일주일에 하루를 쉬었다. 휴식으로 하루를 모두 보내는 게 불안해 쉬는 날에도 오전에는 공부를 했다.
 
공무원 시험 공부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외울 내용은 방대한데 공부할 시간은 한정돼 있다.가능한 한 많은 공부시간을 확보하는 게 유리하다. 과목별 기본서와 문제집은 각각 1000페이지를 가볍게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험에 합격하려면 같은 책을 최소한 5번은 읽고 가야한다. 합격한 사람들중엔 일년 동안 10회독을 넘게 한 사람들도 많다. 행정법 강사 황남기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10회독은 합격에 필요한 최소한의 회독수임을 강조하며 15회독, 20회독을 하라고 독려한다.
 
된소리되기의 예외나 집단적 의사결정의 종류처럼, 마음이 끌리지 않는 지식을 외우는 행위는 사람을 소진시킨다. 20년 전 교재나 요즘의 문제집이나 비슷한 내용을 다룬다. 공부할 때는 책 내용이 나름 의미있다고 자신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수험생활을 버텨나갈 수 있다. 깊이있게 공부하려는 사람은 시험에 떨어진다. 외워야 할 사항이 워낙 산적해 있기 때문에 정답을 고를 수 있을 정도로만 얕고 넓게 공부해야 한다. 수험생들은 '미미광어' '통목특수기' 같은 두문자를 만든다. 연관관계가 전혀 없는 단순암기사항은 기억에 남도록 두문자를 만들어 외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합격생들만이 지겨운 책을 다시 보지 않아도 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합격하지 못하면 힘들게 외운 지식은 무용지물이 된다.

공무원 시험은 자본주의 세상의 경쟁과 자기착취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년보장과 사회적 안정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공무원 시험은 경쟁률이 100:1을 넘는 경우가 흔하다. 유명한 행정학 강사의 말처럼 합격하려면 인간이길 포기해야 한다. 그의 말처럼 문제푸는 '기계'가 되어야 한다. 시간은 훈련된 사냥개처럼 수험생을 밤낮으로 쫒아온다. 수험생은 늘 쫒기는 듯한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에게 시간은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사람이 가진 얼마 되지 않는 식수와 같다. 그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자유는 없다. 그는 인생의 긴 시기를 합격의 가능성과 맞바꾼다. 하루에 12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다. 허리가 아프고 목근육이 딱딱해진다.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어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사시 2차에서 몇 번을 낙방한 뒤 갑자기 미쳐버린 남자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약육강식(弱肉强食). 육체능력이 평균 이하인 사람은 고된 수험생활을 견뎌낼 수 없다. 수험기간 내내 밤잠을 설친 적이 많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공부하는 동안 몸 여기저기가 삐걱거렸다. 어떤 날은 소화가 안됐고 다른 날은 허리가 아팠다. 안그래도 여윈 몸은 날이 갈수록 겨울날 나뭇가지처럼 메말라갔다. 시험을 이주정도 앞두고는 피부 여기저기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 피부과 의사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시험이 끝나고 절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부를 하지 않으니 피부병이 사라졌고 거짓말처럼 잘 잤다. 하루종일 붙들고 있던 공부가 나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던 거다.
 
써먹을 수 없는 지식을 머리에 꾸역꾸역 밀어넣는 공부라는 걸 알고 있었다. 쓸모없는 지식을 효율적으로 외우기 위해 노력하는 수십만의 대열에 나는 동참했다. 아무도 내게 이 괴로운 경쟁에 참여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도대체 나는 왜 공무원 공부를 하고 있는 걸까?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일이 내게 잘 맞을지는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남들 보기에 번듯해 보이는 직업을 얻고 싶었고 궁색한 내 처지를 공무원 합격으로 바꿔보고 싶었다. 매년 일정하게 상승하는 임금에 안심하며 살고 싶었고 비교적 평탄할 거라 예상되는 미래를 누리고 싶었다. 경쟁률이 높다고 하지만 공부방향을 제대로 잡고 죽기살기로 공부하면 나만은 합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언론에 늘상 보도되는 중소기업의 낮은 임금과 고된 노동환경은 시험합격이 내 문제의 해결책으로 보이게 했다. 다른 진로를 생각해보면 평균임금 이상의 수입을 기대하기가 어려웠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가 막막했다. 공무원은 경쟁률은 높지만 내가 해야 할 공부가 정해져 있었고 합격했을 때의 보상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다. 잘하든 못하든 중학생 때부터 해온 일은 공부하고 시험치는 것 밖에 없다. 내 선택은 합리적이었을까? 수십만의 불합격생들이 빠지는 생각의 오류에 불과했을까?

시험장소인 진해의 중학교는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가량을 가야 했다. 전날 버스터미널에 가서 미리 차편과 이동시간을 확인해 두었다. 시험 시간이 오후 3시쯤이라 점심 먹기가 애매했다. 버스에서 체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쿠키 한조각을 천천히 씹어먹었다. 좌석 여기저기에 나처럼 시험을 치러 가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멀미 나는 버스 안에서 오랫동안 공부해온 문제집을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8월의 진해는 무더웠다. 긴 횡단보도를 건너 언덕길을 10분정도 올라가자 응시 장소인 중학교가 보였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이곳에 오기 위해 10개월을 공부했다. 조금만 더 버티자고, 정신 차리자고 마음속으로 되뇐다. 운동장 저편에 한 남자 수험생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추레하고 후줄근한 옷을 입은, 얼굴이 까무잡잡한 사내는 마치 80년대 사진 속 인물 같다. 저 사내는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옷을 사지 않은걸까? 대체 몇 년 동안 고려시대 무덤양식과 로마자 표기법을 공부해온 걸까? 그의 모습에 초라한 내 청춘이 비춰보여 마음이 쓸쓸하다.
 
수백명이 한 장소에 모여 시험을 치르고 흩어진다. 시험장 풍경은 겉보기엔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수험생 한명 한명에겐 살아온 세월과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각자의 이유로 시험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쓰디쓴 풀을 씹는 심정으로 2년, 3년, 길게는 8년의 삭막한 시절을 보내고, 시험 당일, 인생을 걸고 시험장을 찾는다. 그들 각자에게도 나처럼 자식 잘되길 간절히 바라는 부모가 있을 것이다. 
 
시험을 치러지는 교실에는 결시자를 제외한 스무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다. 왼편에 앉은 남자의 두꺼운 행정법 교재에 깨알같은 필기가 페이지마다 빼곡하다. 긴장된 마음으로 책을 보며 시험 시간을 기다린다.
 
시험이 시작됐다. 학생부터 감독관까지 교실에 있는 모두가 숙연하다. 75분 동안 75문제를 풀고 마킹까지 해야 한다. 시간 안배가 중요하다. 한 문제에서 지체하는 만큼 다른 문제를 풀 시간이 줄어든다. 미리 계획한 대로 행정학, 국어, 행정법 순으로 문제를 푼다. 모르는 문제는 과감하게 포기하고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국어 과목에서 범위를 벗어난 문제가 여럿 출제돼 시간이 지체됐다. 중간마킹을 하고 나니 남은 시간은 18분, 25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 긴장돼서 입에 침이 마른다. 심장이 흉곽 안에서 쿵쿵 소리를 내며 요동쳐서 내게 심장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침착해야 한다.
 
문제를 읽으며 답안지에 곧바로 표시한다. 지문을 다 읽을 시간이 없어 정답이라 생각되는 지문이 있으면 다른 지문을 보지 않고 주저 없이 마킹했다. 마지막 문제를 풀고 있을 때 스피커에서 시험종료를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재빨리 2번으로 찍고 감독관의 지시대로 양손을 머리에 올린다. 시험이 끝났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했다.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에 힘이 빠졌다. 긴 한숨을 쉬었다.
 
가방에 천천히 소지품을 넣고 운동장으로 나왔다. 벤치에 앉아서 학교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 중 대부분은 얼마후 자신이 불합격이란 걸 확인할 것이다. 긴 시간동안 닫힌 공간에서 똑같은 내용을 외웠던, 무척이나 닮은 형태로 1년을 보내왔을 수백명의 수험생들이 서로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은 채 굳은 얼굴로 교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기사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ss_pg.aspx?CNTN_CD=A0002484199&PAGE_CD=&CMPT_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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