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수기를 쓰는 날이 오기만을 그리도 꿈꿔 왔는데 역시 꿈은 이루어지나 봅니다..
지금부터 2012 경기도 소방 공채 최종 합격한 약 1년 5개월간의 여정과 그이전까지의 삶을 그려 보려합니다.
공부 방법 운동방법 중간에 힘겨웠던 과정들 극복한 방법등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서술함은
저와 같은 처지 혹시라도 더 어려운 상황에서 준비하시는 분들께 작게나마 힘이 되고자 또는 도전이 되고자 남김을 먼저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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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올해 딱 서른입니다
초딩때부터 공부라고는 담을 쌓고 살았지요
중학교때 완전 개꼴통같은 인생 살다가
실업계 고등학교로 가서 나름 맘잡고 공부시작했었어요
아시자나요 실업계 벼락치기만 해도 충분히 반에서 10등 안에는 든다는 걸
고교 졸업후 대학보다 집안형편때매 사회생활을 먼저했습니다.
사실 사회생활은 초등학교때부터 온갖 알바를 했기 때문에 설렘이나 긴장 이런건 없었던것 같습니다
제대후에 대학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웬만한 회사 이력서도 못넣는다는 현실의 벽을 깨닫고 그냥 중소기업 아는 선배 밑,온갖 알바를 가리지 않고 일했습니다.
알바의 종류는 셀수도 없고 주로 굵직하게 했던일은 3d업종계열에 속했는데 프린터 유지보수업체,청소사업, 방송국 무대셋팅업체, 판촉물영업사원, 용역경비, 클럽경호원,현금호송,은행청원경찰 등등 밤낮이 따로 없는일들을 주로 했었죠
나름대로 신조와 신념이 있었기에 고교시절부터 근 10년 가까이 담배와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었습니다.
하루에 두탕씩 뛰는일이 허다했기때문에 체력관리가 필수였죠
중간에 아마추어 복서로도 2년 활동했었습니다.
어느순간 한계에 부딪혀서 늦게라도 공부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대학 못나오면 평생 꼬리표로 남게된다는 인식이 팽배했기에요
낮에는 일을 해야했기에 야간대 사회복지과를 어렵사리 들어간게 09년도였습니다.
사복과 나오면 그래도 취직은 잘되겠거니~
주경야독 3년을 하다보니 돈은 돈대로 안되 공부는 회의에 젖어
친구의 권유로 알아본게 소방관이었어요
알아볼수록 너무 매력적이고 가치있는 직업이란걸 알게 됐죠
2011년도 3월부턴 주말마다 영어 잘하는 아는 후배 데리고 도서관에서 영어공부 부터 시작했습니다.
영어 병신이었거든요
비동사도 먼지 모르는 수준이었으니 영어가 젤 짜증났죠
제가 영어 기초부터 시작순서는
한일선생 기초영문법 > 수능특강 김정호선생의 a.b문법 >강수정쌤new grammer > 신성일쌤의 패스스토리 기본서
순서로 했습니다.
독해는 강수정 쌤 중단문 리딩 기본서랑 제니스쌤의 독해기적만 팠구요
물론이과정이 단시간으론 안되더라구요
그리하여 2011년 5월 학교 휴학과 직장사표 그리고 삭발과 동시에 모아놨던 돈 500만원으로 본격적 공부를 시작했슴다
근데 처음에 119 고시라는 허접한 패키지 강의에 낚여 3개월 가까이를 허비한거 같아요
돈두 70만원정도 날리구요
들을만한건 국사밖에 없어서 허접하다만 흐름잡는 용으로 썼습니다.
영어 문법은 위 방법으로 오랜시간으로 서서히 익혔어요 그래도 영어는 어렵더라구요
다른것도 마찬가지겠지만 영어 공부의 왕도는 없는거 같아ㅏ요 오직 정도만 있는데 그 정도란것이
암기와 이해 그리고 꾸준한 반복학습만이 시간이흘러 학습의 능력을 성숙시킨다는걸 알았어요
지금도 모르지만 그래도 문제 나오면 멀 물어보는지는 알정도는 되는거 같습니다
독해는 매일 3~5개 지문으로 직독직해로 눈으로 하는거 한번 그렇게해서 답까지 찍는데 시간재고
다시 직독직해 자세히 해석하고 파악하는데 한번해서 시간재고를 반복했어요
연습할때 긴박감 없이 하면 시험장에서 시간날리는거 순식간이라 시험장 모드로 공부를 했어요
단어는 도서관 왔다갔다 할때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매일 우겨넣엇습니다 따로 공부하는 시간 없었구요
후에 스터디 친구랑 같이 매일 외웠던거 누적으로 쪽지시험보니까 도움이 많이 되더라구요
그렇게 2개월 하니까 워드스펀지 한권 뗐어요 근데 워드스펀지는 비추에요 보카바이블이 좋다고 하더라구요
영어는 머 한과목이 3과목을 차지하니 만큼 매일 반복하는게 좋은거 같습니다
저는 오전시간엔 항상 영어만 했었어요
국어는 배미진쌤 알찬국어만 봤습니다.
제가 경기필기시험만 두번 쳤는데 소방직 쪽 국어에선 어려운 문법은 안나오더라구요
배미진쌤 문법은 정말 디테일하게 잘설명해주셔서 일행직에선 맞겠지만 우리쪽은 완벽히 안해도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뒤로 굵직한 대표적인 문법만 공부했고 문학을 많이 봤습니다 시와 고전문학,소설은 2회독씩 한거같아요
그리고 절대 중요한게 기출문제를 무진장 풀어보기를 권해드려요
시중에 나온 문제들 다 풀어보시면 국어는 충분히 고득점 가능하다고 봅니다
국사입니다
이미 허접강의로 동영상과 책을 2회독을 끝내논 상태라 전반적인 흐름과 시대별 암기는 어느정도 돼있었어요
시험 3개월두고 통합한국사강의로 굳히기 들어갔는데 강의도 재미있고 암기방법도 좋긴한데
시대흐름쪽에선 처음 접하시는 분들께 어려움을 겪을 만한 수준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추천받기로는 해동국사도 좋다고 들었어서 두가지 병행하셔도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소방학은 조동훈 쌤으로 듣고 무조건 많이 보고 외웠습니다.
기출도 많이 풀고요
시험이 통합으로 바뀌면서 백점방지용 문제는 안나오는거 같더라구요
셤장에서 소방학 6분만에 다풀정도였으니 난이도는 무난햇던거 같습니다
행정법 요 때려죽일 과목
첫시험에서 50점 맞았고요 김종석 행정법만 봤습니다 남은 기간동안 3회독돌리고 기출풀었는데 분량이 장난아닙니다
김종석 기출만 한달 걸렸어요
제가보기엔 강의와 책은 2회독 하고 역시 문제 많이 풀어보는게 좋은거 같습니다.
저는 이런식으로 국어 영어는 매일, 나머지 3과목은 월화수-행정법 국사, 목금토-행정법 소방학
방법으로 했어요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 까지 도서관 집와서 씻고 머리말리는동안 담날 외울 단어 한번더보구..
2011년 경기 2차 시험 올해 2월에 떨어지고 나서
남은 3개월은 정말 악기 독기 끈기로 공부했던거 같아요
첫시험성적 공개 ㅋ
자는 시간10분, 딴생각 하는 시간, 운동시간1시간30분, 밥먹는 시간 20분, 화장실 갔다오는시간, 커피마시는 시간
다 빼고 순수 스톱워치로 매일 10~12시간 찍도록 공부했습니다.
주말 휴식 이런거 없구요
일요일엔 교회 잠깐 갔다와서 8시간이상은 했습니다
너무도 절박했습니다...절박감,절실함, 시험에 떨어지고 난 뒤의 내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미리생각해볼때 휴식은 사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미친듯이 2달을 넘기는무렵 시험 한달전 정확히 4월5일 도서관 출근하는중에
왼쪽눈이이상하다는걸 깨달았어요
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근육들이 이상해지더라구요
병원에 갔습니다
안면마비..구안와사
왼쪽얼굴의 근육이 굳어져서 양치하면 물세고 눈도 다 안감기는 그런 끔찍한 병에 걸린거지요
근전도검사 심전도검사 맥검사로 보니 근육손실율이 90%가 넘어서 후유증도 생길수 있다고 하고
스트레스랑 피로도가 160이래나?(수치는 잘몰겠음)
운동도 하지말고 쉬면서 공부하라고 하더라구요
경희대한방병원까지가 저희집에서 1시간 30분
오가는시간이 아까워 입원햇습니다.
정말 절망적이었습니다.
당시 경기도 경쟁률이 30:1이고 공채선발인원이 30명밖에 안되서
목표는 서울이었고 그래서 체력도 일찌감치 미리 준비했던건데
왜 나에게 이런일이...왜 하필 지금?
하~인생참...신이 있다면 나한테 이보다 더 큰 절망을 줄수 있는가? 얼마나 더 바닥을 쳐야하는지...
끝없는 회의감,자괴감...시간은흐르고
병원에서도 새벽부터 밤까지 커튼쳐놓고 귀마개에 헤드폰 꽂아가며 공부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어제까지 봐왔던 책을 다시 펴서 보는것 밖에는 내가 할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쉬는시간은 하루세번 침맞는 시간...
병원은 감옥같았고, 침맞는 것은 고문과도 같았습니다....
2주 입원해 있는동안 4일째 되드니 주말로 인해서 병실이 싹 비더군요
비가 엄청 내리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한밤중에 너무 서러웠습니다.
사람이 고립되고 극악에 달하면 죽을수도 있겠단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아니 죽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 했습니다.
혼자 침대에 일어나서 커튼 다이 잡고 이게 사람이 감당할수 있는 무겐가 아닌가 만져보기까지
어리석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군요....
그래도 홀로계신 어머니...
다른사람은 몰라도 울엄마는 나만 보며 사는데...
더힘든 고통두 겪어왔는데 이렇게 무너질수 없지 않은가...
버텼습니다. 극복했다기보다 초월했다기보단 계속 견뎌냈습니다.
끝까지는 가야했습니다...
시험은 봐야하니까요...
운동도 정지된 상태에 몸은 무거워졌고 결국 서울시험은 포기하고
경기도로 응시했고 결국 61명의 동점자수 포함해서
필기 시험합격자 명단에 제이름이 있더군요
믿을수 없었습니다.
눈을 의심한다는게 어떤의미인지 알겠더군요
사실 떨어진줄 알았죠
이틀 미친듯이 술을 마셨고 떨어진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공장알바 5/14일부터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필기시험일로부터 필기합격자 발표날까지의 약 2주동안도 출퇴근 거리를 매일같이 공부했습니다.
3개월만 바짝 일하고 다시 죽어보자 라고 생각했는데
필합명단에 수험번호와 제이름을 보고 할수있구나 하면 되는구나...
어머니께 전화드렸습니다.
고생했다 아들....울먹이며 말씀도 잘 못하시는 중에
엄마!!아직 울때 아니에요~
최종합격하면 그때 울어도 늦지 않아요....
공장 사장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ㄱ그길로
체대입시학원 끈었습니다.
학원내부에서 출구쪽 간판
광명시에 위치한 경희체대...
어려보이는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깜놀했는데
특채생들 위주였습니다....
몇가지 상담하고 제멀을 뛰었는데 2m60cm!!!
원래 전에 다니던곳에선 250을 넘지 못했는데
얼굴 틀어지기전 다녔던 헬스에서 하체운동이 효과를 보는듯했습니다.
하체 운동으론 스쿼트, 쪼그려 뜀뛰기, 누워서 중량올리기 등으로 했습니다
악력은 원래 42나오는 수준이었습니다 1년전 서울 선실기 체력시험에서 악력과락으로 집에 올정도였으니까요
원장님 요령알려주시고 잡아보니 59가 나오데요
전에 다니던 체력학원에선 아무리 해도 53을 못넘었는데요
역시 도중에 헬스장에서 오른팔로만 턱걸이 훈련과 요령이 덕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장다니면서 철판자르는 가위가 있습니다 양철가위라고 하죠
그거 열댓번자르다보면 손에 물집잡히고 난리 납니다 다들 기피하죠
일부러 제가 했습니다 아구힘 기르는덴 최고더군요 그렇게 연마했어요
왼팔은 복서시절 팔꿈치 인대 끊어져 인대봉합수술로 아예 못써서 오른팔만 가능했죠
배근력 초기는 160을 못넘겼습니다.
두달전 헬스장에서 보조운동할때 데드리프트가 확실히 도움이 되더군요
왜냐면 배근력은 허리 다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요령문제거든요
절대 허리힘으로 드시면 안되요 부상위험이 굉장히 큰데 데드리프트는
무게보다 허리힘이 아닌 등으로만 드는 힘의 균형이나 자세잡는데 도움이 되요
그래서 기계잡을때 숙련된 방법으로 하니 만점이 나오더라구요
윗몸은 무한반복이 답이고 셔틀런은 원래 제 주종목이라 자신있었죠
발앞꿈치로만 뛰는게 가볍게 뛸수 있고 코로 들이키고 입으로 쉬는게 저만의 호흡법
그리고 터닝 기점에서 오른발로 지탱하고 터닝이 다리 피로감을 줄여주는 저만의 방법입니다
팔은 최대한 적게 흔들구요 65개부터 스퍼트 올려 전력으로 달리는게 제 방법임다
좌전굴은 연습하다가 오른골반 탈골와서 고생좀했습니다
몸이 많이 데워진 상태에서 연습을 하는게ㅍ부상을 줄일수 있구요
역시 매일 조금씩 스트레칭이 효과적입니다
저는 61명중 필기 꼴등이라는 생각으로 이빨꽉깨물고 운동했습니다.
어떻게 잡은 기회냐..체력으로 뒤집어야한다..
다시오지 않을 이기회..죽어도 시험장에서 죽겠다.
여기서 1점이라도 까이면 이건 정신력부족이란 생각으로 독하게했습니다
학원에서 원장님이 항상 자신감을 많이 실어주셨고 원장님이 가르쳐주신 요령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얼굴이 틀어져있으니 웃을수가 없어 사람들이랑친하게도 못지내고..
어쨌든 그리하여 체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안일한 생각버리고 긴장하고 독하게 하면 안되는게 없더군요
시험날 윗몸은 5초 남겨두고도 56개찍고
제멀은 스파이크화 효과로 2m82cm
배근력 218kg
악력 시험장효과로 64kg
셔틀런 만점
좌전굴 26.3cm
6종목 10점씩 전종목 60점으로 공채 체력 만점!
실기치른 60명중 유일무이 만점!!
내생에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체력은 평소 틈틈이 하고 시험보기 3개월전쯤부터 체대다니며 필합하면 본격적 스퍼트 올리는게
부상을 방지하는 최고의 방법인거 같습니다.
운동잘하시는분들 부상으로 제점수 못받는분 꽤 많이 봤거든요
1.0이던 시력이 공부하는 기간동안 0.3으로
떨어져 없는 형편에 신검 앞두고 라섹수술을 감행하고
면접을 준비했죠
학원에서 만난 구조형님과 구급여자분들 위주로 면접스터디를 했고
남4여4 구조,경방,구급 직렬로 주2회 전공,시사,주제토론,개인인성 부분으로
스터디를 했습니다.
면접준비는 절대적으로 스터디를 권고합니다.
장시간 공부하느라 말하는 연습이나 생각이 편중되기 쉽기때문에
스터디하면서 말하는연습ㄷ 하고 타인 의견도 들어가면서 생각순환,공유 하기가 아주 좋더군요,
저는 면접준비하면서도 그동안병원 입원비용, 통원치료 비용, 라섹수술비용,면접용 정장비용을 메우느라
계속 방음문 제작 공장 알바를 했습니다.
아직도 하고 있구요
8월말까지 하고 9월부터 입교전까진 봉사활동 ㅎ하러 다닐 계획입니다.
최종 발표가 뜨기 며칠전부터 잠도 못자고 전전 긍긍 했지만
함께 준비한 스터디원 분들과 같이 릴렉스 풀면서 서로서로가 도움이 되었던거 같습니다
감사하고 다행히도 저희 스터디 8명 전원합격으로 너무 기쁘구요ㅋㅋ
지는것도 인생이다...
만년 1등만 하던 F1 종결자 미하엘 슈마허가 우승을 코앞에 두고 차량결함으로 실격되고나서 인터뷰때 한말이랍니다
무슨 개연성이 있겠냐만은
항상 비주류 인생을 살아오던 저에게 어려움을 겪을때마다 늘 떠올렸던 문장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이길때보다 질때가 더 많다..
계속 지다보면 한번은 반드시 이긴다..
그때가 비로소 시작이다..라고 위안삼았습니다.
아직도 얼굴은 완전히 낫지 않았고 합격이 끝이 아닌 이게 겨우 시작에 불과한 시점에서
다시한번 초심을 잡고자 합니다..
정말 나라와 민족을 위한 삶을 살기위해 시작했던 지난 시간들 속에 차마 글에 쓸수 없는 여러 어려운 사정도 있었지만
그 험난한 과정을 겪었기에 지금의 합격의 영광을 누린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공부 시작하시는 분들, 혹 떨어져서 다시 도전하시는 분들, 합격해서 이제 진짜 소방관으로 살아가실 동료분들
모두가 각자 위치에서 후회없는 선택과 노력들로 최선의 모습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바로 그것이 공공의 행복이며 좋은 나라, 좋은 세상을 만드는 기반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좌우명
땀과 눈물과 노력과 희망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세계 최강 경기 소방 파이팅!!
긴글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