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경희대학교를 3 학년 2 학기까지 다니다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 저는 지인들의 추천으로 15 년도 학생회장에 입후보했지만 저를 지지해주겠다던 친구가 배신하여 상대 후보로 입후보했고 , 근소한 차이로 지고 말았습니다 . 친구를 잃은 상실감 , 추운 겨울 오랜 선거운동으로 인한 피로 , 저를 지지해주신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 그리고 패배감에 빠져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습니다 . 이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 결국 휴학을 하게되었고 , 집에 돌아와서 무념무상으로 지내다가 문득 진로를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지금 시점에서 가장 빠르게 합격 가능성이 있는 공무원시험을 보자는 것이었고 , 그 시험은 경찰시험이었습니다 . 이번 3 차시험이 사실상 마지막 대거채용이라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에 졸업을 못하게 될 것을 각오하고 시작했습니다 . 보람된 직업이고 , 경찰관이라는 직업으로 살게 된다면 죽을때가 되어서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 5 월에도 응시 기회가 있었지만 , 어설픈 준비상태로 어설프게 붙으면 체력도 , 면접도 불안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 뻔했기에 응시하지 않았습니다 . 확실한 점수로 합격하자는 생각으로 9 월 시험을 처음이자 마지막 목표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 저의 시간표를 월단위로 정리해보았습니다 . 1. 공부 환경 저는 우선 핸드폰을 없애고 , 카카오톡 , 페이스북 계정을 모두 삭제했습니다 . 면접 스터디 시작날까지 부모님과 체력선생님을 제외하고는 사람을 단 한명도 , 단 한번도 만나지도 , 연락도 하지 않았습니다 . 집에서 오롯이 혼자 인강으로만 공부했습니다 . 밥을 먹을때도 양치를 할때도 샤워를 할때도 인터넷 강의를 크게 틀어놓고 생활을 공부로 만들었습니다 . 부모님께서는 저를 위해서 수험기간동안 집에 손님도 한 번 들이지 않으셨고 , TV 도 틀지 않으셨고 , 말도 거의 걸지 않으셨습니다 . 2. 가산점 획득 아직 수험생활을 시작하지 않으셨다면 편한 마음으로 가산점 만점을 먼저 채울 것을 권하고싶습니다 . 어느정도 경험이 있으신 분이라면 최종까지 4 점을 가져갈 때와 5 점을 가져갈 때 그 엄청난 차이를 이미 잘 아실 것이며 , 가산점 제출기간이 임박했을 때 가산점을 취득하려 하는 것이 얼마나 큰 도박인 지를 잘 아실 것입니다 . 저는 9 월 3 차시험을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준비했기에 시간이 7 개월밖에 주어지지 않은 시점이었고 , 여유롭게 가산점에 할애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없었습니다 . 그랬기때문에 반드시 한 번에 5 점을 취득해야 했고 , 기본강의 시리즈와 병행하여 가산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 저는 가산점에 해당하는 자격증이 없었고 , 그래서 당시 아모르 이그잼에 계시던 박우찬 강사님의 강의를 결제했습니다 . 실글 강의는 답안작성 요령과 나올만한 문제 유형 몇가지 , 그리고 원고지 작성법 크게 세 파트로 진행된 것 같습니다 . 한번에 5 점을 획득하지 못하면 추가로 다른 가산점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 시간을 절대 뺏겨서는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 약 2 주동안 끊임없이 시간을 재면서 모의고사를 풀었고 , 객관식 답안과 해설을 익혔습니다 . 운이 좋게도 예상 문제집에서 보았던 문제와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나온 객관식 문제가 많이 출제된 덕분에 실용글쓰기 5 점을 한 번에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 아래는 제가 공부한 책과 , 답안을 적은 연습장입니다 . 3. 필기 공부 저는 영어만 어느정도의 베이스가 있었고 , 나머지는 노베이스로 공부를 시작했으며 , 조정 72 점으로 합격하는데 7 개월이 걸렸습니다 . 필기는 다른 합격 수기들을 살펴보시면 저보다 훨씬 출중한 실력자분들의 훌륭한 공부법들이 많이 있으므로 , 제 공부방법은 작은 참고라도 되길 바라면서 적어봅니다 . 1) 영어 영어는 역대 경찰 기출문제를 풀어보니 75 점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 문법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단어가 많이 부족했었습니다 . 그래서 최소한 단어는 한권을 완벽하게 익히자는 마음으로 경선식 영단어 수능편과 공편토를 구입했습니다 . 수능편은 다의어와 반의어 , 동의어 위주로 공부하고 , 나중에는 뒤의 색인만 보면서 맨 첫단어부터 맨 끝의 단어까지 4 시간 안에 다 훑어본다는 목표로 바로바로 뜻이 생각나게끔 연습했습니다 . 뒤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을 생각해서 , 오늘 앞부터 시작했다면 다음날은 뒤에서부터 , 다음날은 중간에서부터 양 끝으로 진행하며 단어장 훑기를 연습했습니다 . 아래는 경선식 수능편 맨 뒤의 색인 부분과 공편토 교재입니다 . 시험 전날에는 모든 단어를 보면서 3 시간만에 뜻을 떠올려낼 수 있었습니다 . 공편토는 앞부분 20 강까지인 Top Priority 부분만 확실히 암기했습니다 . 모의고사는 안미정샘 얼리버드 하프모의고사로 연습했습니다 . 채점과 해설강의는 보지 않았고 , 오로지 걸리는 시간만을 쟀습니다 . 모르는 문제를 빨리 버리고 넘어갈 수 있도록 자신을 컨트롤 하는 용도로만 사용했습니다 . 2) 국사 순서대로 필기노트 , 2.0 5.0 교재입니다 국사는 메이저 학원을 검색해보고 오티 강의를 들어보면서 정했는데 한길샘을 보자마자 아 이사람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과를 나온 저는 국사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에 국사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습니다 . [ 2.0 올인원 - 3.0 - 필기노트 무료 강해 - 5.0 ] 이렇게 커리큘럼을 탔습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3.0 에서 나온 사료들을 따로 표시해놓고 수시로 익혔고 , 시험 마지막날에 최종 체크한 뒤에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 저는 다른 국사선생님 강의를 하나도 안들어봤기 때문에 다른 강사분들도 다 길게 두세시간씩 하고 기본강의는 원래 90 강이 넘는 줄 알았습니다 . 모의고사는 오태진샘 모의고사를 빼서 풀었고 , 역시 해설강의는 듣지 않았습니다 . 채점도 하지않았고 , 오로지 내가 바로 풀 수 없는 문제를 고민 없이 넘기는 연습용으로 사용했습니다 . 시험지에는 푸는 데 걸린 시간만을 적어두었고 , 목표는 12 분으로 잡았습니다 . 3) 형법 형법은 김원욱샘 커리를 탔습니다 . [ 기본강의 2 회독 - 심화강의 0.5 회독 - 원기총 1 회독 - 1 단계 - 2 단계 - 최신판례 ] 이 순서로 강의를 들었습니다 . 아래는 기본서 , 원기총 , 그리고 5 개년 판례집입니다 . 기본을 들을때는 형법을 버릴까를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 심화 판례강의도 신청했지만 각론만 듣고 포기했습니다 . 너무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고 , 진도별 모의고사도 안풀렸기 때문이었는데 ,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원기총 강의를 신청했고 , 원기총을 수강하면서부터는 문제푸는 요령과 공부방법을 알게됐습니다 . 당시 원기총 책은 나오자마자 두 번이나 품절이 되는 바람에 지방에서 구하기가 매우 힘들었고 , 수시로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원기총이 출간되었는지 확인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 원기총 수강 이후 형법은 그런 걱정을 왜 했었는가 싶을 정도로 효자과목이 됐습니다 . 2 단계 문제풀이때는 강의를 3 회정도까지만 듣다가 , 혼자 하는게 더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뒷부분을 모의고사만 빼서 풀었습니다 . 김원욱샘은 원기총 7 번을 보면 90 점이 나온다고 했었는데 7 번을 본다고 무조건 되는게 아니라 시험 일주일 전부터 다른과목을 공부하면서도 7 번을 볼 실력이 되어야 90 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 그리고 개인적으로 기본강의를 두 번 돌려들었지만 이 부분은 제 시행착오가 컸던 것 같습니다 . 2 회독이나 할 정도의 가치는 없었던 것 같고 , 교재 , 강의 각 1 회독이 가장 적당한 것 같습니다 . 기본강의는 어쩌다 한번 나오는 신비로운 이론문제와 빈출 판례를 비슷한 비중으로 다루었고 , 심화 판례강의에서는 어쩌다 한번 나올 지도 모르는 신비로운 판례를 빈출 최신 주요판례와 비슷한 비중으로 다루었던 것 같습니다 . 제 사견으로 형법은 빈출판례를 확실하게 익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원기총은 모든 기출을 포함한 만큼 많이 나오는 판례를 더 많이 보게되었고 , 이것을 복습하면서부터는 점수가 수직상승했습니다 . 지금 기본강의에서 이해가 안되어 헤매고 계신 분들은 수박 겉핥기 정도의 이해도만 가지고도 바로 원기총으로 넘어가셔도 됩니다 . 여담이지만 강의를 보다가 간혹 학생에게 질문을 할 때는 또래 사람의 목소리가 그리워서 한 번씩 돌려서 목소리를 다시 들어보기도 하였습니다 . 저도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 질문에 인강 친구들이 대답을 못할 때마다 나만 바보가 아니구나 하고 위안를 얻기도 하였습니다 . 3) 형소법 형소법은 신광은샘 커리를 탔습니다 . [ 기본강의 2 회독 - 신의한수 강의 2 회독 - 1 단계 - 2 단계 ] 커리로 갔습니다 . 처음에는 형법보다 이해도 잘되고 쏙쏙 들어왔는데 갈수록 비교되는 비슷한 테마가 많아지면서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 아래는 신광은샘 기본서입니다 . 신광은샘이 기본서 단권화를 많이 추천하시길래 해봤는데 , 저는 성격이 지나치게 꼼꼼해서인지 단권화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 그래서 중도에 단권화를 포기하고 신의한수를 원기총 복습하듯이 계속 반복하는 식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 법원직과 사시기출 , 그리고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이런 말을 하셨던 부분을 잘 체크해놓았고 , 그부분들은 시험 보름 전부터는 거의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 아래는 신의 한수이고 , X 를 쳐둔 지문은 앞에서 비슷하게 나왔던 지문으로 , 시험 3 개월 전에는 X 가 쳐지지 않은 부분을 위주로 , 시험이 임박했을 때는 X 를 위주로 회독하였습니다 . 모의고사는 2 단계 문제풀이로 시간을 재는 연습만을 했습니다 . 이번 형소법이 특히 어렵게 출제되었다는 평이 많았지만 시험장에서 이 방법이 빛을 발했던 것 같습니다 . 5) 경찰학 개론 경찰학은 장정훈샘 커리를 탔습니다 . [ 기본서 강의 2 회독 - 5 개년 기출 2 회독 - 1 단계 - 이전연도 숫자특강 - 2 단계 - 숫자특강 ] 커리로 갔습니다 . 이해가 거의 없고 실수를 안하면 고득점이 가능한 과목이었기 때문에 다른 과목과 공부방법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 가족사를 말씀하시다가 이론으로 연결시키는 특유의 진행도 재밌었습니다 . 네친구에 잘 나온다고 강조한 부분은 따로 표시를 해놓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부분도 따로 체크해놓았습니다 . 나중에는 네친구만 열심히 보다가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 아래는 Top to Toe, 네친구 , 기본서 교재입니다 . 숫자특강과 위원회는 따로 제가 프린트를 만들어서 아침에 20 분만 들여서 1 회독씩을 할 수 있게끔 만들고 걸레짝처럼 될 때까지 반복했습니다 . * 모의고사는 시간체크용 , 모르는 문제를 미련없이 빠르게 버릴 수 있도록 연습용으로만 활용했습니다 . 푼 문제지를 채점도 하지 않았고 , 오로지 문제를 끝까지 푸는데 걸리는 시간만을 체크해서 한 과목을 12 분 내에 모두 풀 수 있게끔 연습했습니다 . 모두가 잘 아시다시피 순경시험은 수정테이프를 쓸 수 없기때문에 , 여유롭게 시간을 남기고 차분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마킹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한 두 문제를 실수로 틀리더라도 많은 시간을 남기는 것을 목표로 준비하는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이 방법은 한문제라도 실수해서는 안되는 여경 수험생분들께는 그다지 권하고싶지 않습니다 . 시험 보름 전부터는 하루에 18 시간 이상씩 네친구와 기출시리즈 회독수를 최대한 빠르게 늘리고 국사는 5.0 강의를 2 배속으로 쉴 틈 없이 계속 들었습니다 . 시험장에서는 필기 문제를 다 풀고서 40 분정도의시간이 남았고 , 저는 여유롭게 마킹을 한 후 , 합격을 확신하고 시험장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 4. 인적성 검사 , 사전 조사서 인적성과 사전조사서는 청마다 시행일이 다릅니다 . 전남청의 경우는 체력시험보다 훨씬 전인 인적성검사 당일에 사전조사서 작성을 실시했고 , 다른 청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인적성 검사는 학원에 가지 말라는 추천과 후기가 많이 있길래 가지 않았지만 , 저는 안갔던 것을 굉장히 후회했습니다 . 인적성에서도 정답이 명확한 질문들이 몇 가지 있는데 저는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있었고 , 그 정답을 고르는 유형이 생각 외로 많이 출제되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되었습니다 . 예를들어 불법에 관련된 지문이 나오고 , 1 매우 그렇다 2 보통 그렇다 3 보통 틀렸다 4 매우 틀렸다 가 나왔다면 여기서 만점짜리 답은 매우 틀렸다로 알려져있습니다 . 하지만 저는 이런것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유형에 모두 3 으로 마킹을 했었습니다 .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제가 다른 답안도 저렇게 작성했기 때문에 제게 위법한 지시와 부당한 지시를 묻는 그런 문제를 개인면접때 물으셨던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저희 전남청은 새로운 인재상 검사가 도입된 이래 모든 청들중에 처음으로 시험을 치렀기 때문에 첫번째 모르모트가 되어 학원의 도움조차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 인재상 검사를 돌이켜보면 열정 / 노력 / 팀워크 / 준법성 이 네 가지를 골자로 하는 4 가지 보기들 중 가장 자기를 잘 표현하는 것과 , 아닌 것을 고르는 문제형식으로 출제되었습니다 . 저는 가장 잘 표현하는 것으로 팀워크를 , 가장 표현하지 못한 것으로는 열정을 체크했습니다 . 거의 2 인 1 조 이상으로 움직이는 조직이기에 ' 팀워크 ' 를 저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으로 모두 몰아서 체크하였고 , 신임 순경으로써 지나친 열정을 가지게 되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열정이 지나친 후임은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고 , ' 열정 ' 을 저를 가장 못 표현한 것이라고 몰아서 체크하였습니다 . 이 부분들은 제가 학원에서 모범답안 강의도 들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제 경험담과 생각만을 써보았습니다 . 인적성 학원 꼭 가시길 바랍니다 . 그리고 모범 답안을 정확히 익히셔야됩니다 . 여기서 무난하게 통과하셔야 면접에서 고난을 겪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인적성시험 직후에 사전조사서 질문지를 작성했는데 그 날 바로 보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었기 때문에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 1) 사전 조사서 질문 ‘ 청소년기에 내가 존경하는 , 내게 영향을 끼친 인물이 있을 것입니다 . 그 인물과 , 그 인물을 존경하는 이유를 서술하십시오 ’ 2) 제가 작성한 답안 저는 이순신장군을 존경합니다 . 이순신장군은 나라를 구하신 영웅이시기도 하지만 , 시험중에 말에서 떨어지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늦은 나이까지도 무과 시험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고 , 이순신장군의 그 사례를 떠올리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끈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 그리고 탁월한 리더십을 지니셨었기에 , 제가 리더의 역할을 할 기회가 왔을 때 그 리더십을 실천해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 3) 사전 조사서 작성 대비책 저는 이순신장군의 리더십이라는 과목을 대학에서 논문으로 배우면서 이수했던 적이 있어서 나름대로 괜찮은 답안을 쓰고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다른 청에서는 제한시간이 15 분 , 20 분으로 , 상대적으로 길게 주어졌지만 전남청에서는 굉장히 짧은 10 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 그리고 수정테이프의 사용이 불허되었으며 , 고친 글자도 알아볼 수 있도록 남기라는 제한까지 걸으셨습니다 . 어떤 방식으로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지 , 글을 쓸때 어떤 실수를 하는지 , 그런 과정들까지 보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내년에도 이와 같은 패턴으로 사전조사서 작성이 진행될 수도 있기에 ,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논리 정연하게 본인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연습하고 , 그것을 글로 바로 옮길 수 있도록 하는 연습도 반드시 하셔야된다고 생각합니다 .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제게 온 질문과 달리 , 상황질문이나 준법정신에 대한 질문도 갔었다고 합니다 . 비법자를 대상으로 이런 질문이 간다면 굉장히 면접이 힘들어질 수도 있기에 , 되도록이면 시작자체를 3 법으로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 혹시 필기에 합격하고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인적성 시험 전날까지 절대로 놀지 마시고 면접서적을 하나 사셔서 정독하시길 바랍니다 .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 면접 모범답안을 익히셨다면 쉽게 쓸 수 있는 문제들이 종종 나오는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사전조사서는 면접에서 굉장히 높은 비율로 관련 추가질문이 들어오기 때문에 압박이 들어올 여지를 남기지 않도록 추상적인 표현은 삼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저와 같은 경우에는 이순신장군의 리더십을 실천하려 했다 라고만 썼기때문에 , 사례를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는 추가질문을 받았었던 것 같기 때문입니다 . 5. 공부와 체력의 병행 저는 첫 응시라서 당시 체력의 중요성을 잘 몰랐지만 저는 체력을 일찍 병행했던게 정말 신의 한수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보통 필기 시험이 끝나고 한달의 기간이 주어지더라도 , 주변의 경시모인들이나 면접스터디원의 제보에 따르면 한 달의 체력 투자로는 기록이 그리 많이 오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저는 체력이 좋지 않은 편이었기 때문에 아침마다 뒷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며 체력을 길렀습니다 . 처음에는 집에 와서도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 보름쯤 계속하니 다리에 힘이 붙기 시작했고 ,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윗몸도 따로 연습할 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 공원에 비치된 철제 기구로 혼자서 무식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 덕분에 등과 꼬리뼈 살이 다 까지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 . 악력기도 레인보우 악력기 오렌지를 사서 혼자 인터넷을 찾아보고 연습했는데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손가락 살이 심하게 다 까져서 씻는데도 시간을 많이 잡아먹게 되었고 , 아무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 동네 공설 운동장의 네이버 위성사진 축척을 계산해서 1000 미터짜리 코스를 혼자서 지정하고 뛰어보기도 했는데 1000 미터를 매일 연습하다 보니 인대가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 이 때 인대가 꼭 접질리지 않더라도 혹사를 시키면 늘어난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 마음은 만점을 원하는데 몸은 안 따라주는 데다가 , 이게 실제 시험이라 생각하고 임하다 보니 모든 운동을 잘못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하게 되었고 , 절실했던 만큼 몸을 더더욱 혹사시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 계속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저를 보고 어머니도 걱정이 되셨는지 어머니께서 직접 주변을 수소문하며 체력학원을 알아봐 주셨습니다 . 그래서 6 월부터 광양 중마동 Sports Mania 라는 체력학원에 등록하게 되었고 , 강도높은 트레이닝과 공부를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 여기서 1:1 수업방식으로 , 주 3 일 과정으로 트레이닝을 1 시간 반씩 받기 시작했고 , 처음 갔을 때의 기록은 30 점정도였습니다 . 코치님은 트레이닝을 하면서 제 기록을 상세히 기록하셨고 , 저에게 맞는 효율적인 기록 향상 운동법을 만들어 기록을 올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 악력기도 처음 잡았을 때는 과락수준에도 못 미치는 안타까운 수치가 나왔지만 코치님의 도움으로 파지법을 익히고 제 손에 맞는 그립을 조정한 뒤로는 50 이상의 안정적인 점수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 처음 한 달동안은 기록 상승이 다소 미미했지만 1 달 경과 후부터는 다른 종목도 기록이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 대학시절에 체육관 알바를 하며 벤치프레스 3 종세트는 열심히 해둔 상태여서 팔굽의 기록이 제일 빨리 오르기 시작했고 , 악력은 파지법을 익힌 후에 급상승 한 뒤에 서서히 , 그리고 윗몸이 제일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 코치님께서는 악력이 몸무게와 어느정도 비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몸무게를 키울 것도 당부하셨습니다 . 몸무게를 올릴 방법으로 밥을 4 끼씩 먹을 것을 당부하셔서 매일 트레이닝 전에 몸무게를 재면서 변화를 기록하고 , 코치님의 말씀대로 하루에 4 끼니씩을 꾸준히 먹었습니다 . 4 끼를 먹는 것이 수험 기간 중 가장 큰 곤욕이었습니다 . 트름이 먹는 동안 계속 올라왔고 , 헛구역질도 계속 올라왔습니다 . 이 상태로도 공부는 계속 해야만 했습니다 . 체력학원에서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생각으로 모든 트레이닝에 죽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 여기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그 동안 공부한게 모두 허사가 된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 덕분에 체력 시작 전에 저는 56 Kg 였지만 66Kg 까지 근육량이 늘었고 기록도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습니다 . 마침내 2 달 후에는 40 점 언저리까지 기록을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 필기와 체력을 병행하는 두 달 동안은 정말 몸이 힘들었고 , 살면서 잠을 자다가 침을 흘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이 기간동안은 자고 일어나면 온 베개가 침범벅이 될 정도로 굉장히 피곤했습니다 . 체력 트레이닝을 받다가 필기시험 보름 전부터는 코치님의 계획에 따라 트레이닝을 일시 중단한 뒤 필기공부에 전념하였고 , 필기시험 다음날부터 이어서 1 달간 트레이닝을 받아 , 총 3 달을 체력에 할애하여 시험장에서는 체력 총점 42 점을 받았습니다 . 시험날에서는 Sports Mania 코치님들이 학원생들을 데리고 목포 유달 경기장까지 태워다주셨고 , 따로 숙소를 예약해주셨으며 , 아침에 워밍업 지도를 해주셨고 , 영양제와 식단까지도 세세하게 신경써주셨습니다 . 아무래도 전적으로 믿고 따르던 코치님이 같이 와주셔서 심적으로 많이 의지가 됐고 그래서 고득점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5. 면접 전 , 현직 면접관 9 명을 초빙해 모의 면접을 진행한다는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어서 이그잼 면접반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 구태여 서울 학원까지 등록한 이유는 프로그램 자체도 마음에 들었지만 전남지역끼리 모였다간 서로 좋은 멘트를 아껴서 소극적이 될 것 같았고 , 근처의 다른 청 사람들과 섞여서 모이자니 교통편이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처음에는 말도 어색하고 버벅댔지만 선거운동을 할 때 연설문을 많이 준비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 말은 이내 시원하게 잘 나오게 되었습니다 . 노량진에는 비싼 방밖에 남아있지 않아서 신림에 고시텔을 잡고 노량진이그잼 본관으로 아침마다 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 버스를 타고 가는동안 폰으로 KBS 9 시뉴스 헤드라인을 보면서 쉴새없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 답변을 만들어 나와의 카톡에 저장해두고 틈틈이 읽었습니다 . 이그잼 면접반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 저는 오후반이었지만 항상 오전에 나가서 다른 스터디 사람들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 어떤식으로 진행을 하는지 기웃거리며 탐색을 해보고 혼자 외진곳에 가서 오후반 팀원들이 올 때까지 자기소개나 지원동기 등 준비한 답변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습했습니다 . 오전반 수업이 시작하기도 전에 굉장히 일찍 오셔서 토론을 하는 분들도 계셨는데 , 그분들을 보면서 저도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고시텔에서는 경찰 다큐멘터리 사선에서를 경찰편만 솎아내어 네 번까지 계속 돌려보면서 신임순경 입장에서 물을 수 있는 상황질문을 스스로 만들어보고 , 답변을 만들었습니다 . 그리고 끝날 때 나오는 좋은 면접용 멘트들을 건졌습니다 . 그리고 그걸 폰에 옮겨적고 고시텔 옥상에 올라가서 혼자 말하는 연습을 계속했습니다 . 2 차때 드라마 미생을 주제로 질문한 곳이 있었다고 들어서 최근 방영된 각종 드라마의 줄거리나 교훈들도 따로 정리하고 경찰드라마로 얼마전에 종영한 미세스 캅도 두 번 정주행 했습니다 . 매일 저녁마다 어머니께 안부 겸 전화를 걸어서 아무런 질문이나 해달라고 부탁드렸고 , 이 방법으로 책에서 나올 수 없는 돌발질문에 대처하는 연습도 계속했습니다 . 또 목민심서나 , 박근혜 대통령께서 경찰의 날 70 주년 행사때 하신 말씀도 동영상으로 찾아보면서 면접에 인용할만한 어구를 찾고 , 그것을 인용하는 연습을 계속했습니다 . 서울에서 마지막날에는 경찰박물관에 가서 , 면접때 풀어놓을 좋은 썰을 만들고 말하기 좋게 정리해두었습니다 . 그리고 마지막날까지 2 차 집회와 한상균씨가 나오는 뉴스 , 토론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매일 아침 조중동 신문의 헤드라인을 살펴보며 강인엽 교수님의 면접의 정석이라는 책을 정독하며 빈출 질문들에 대한 모범답안들을 익혔습니다 . 이렇게 저는 면접 전날까지 ‘그 때 더 열심히 할 수는 없었다 ’ 는 생각이 스스로 들 때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 덕분에 긴장은 했지만 떨림 없이 자신있게 면접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 질문들은 준비했던 질문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 딱 한 번의 버벅임을 제외하고는 스스로 만족할 정도의 답변을 하고 웃으면서 면접장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 아래는 제가 익히려고 써두었던 저와의 카톡과 메모장 , 그리고 제가 익힌 면접서적들입니다 . 면접장에서 받았던 질문과 제가 했던 대답을 그대로 적어보았습니다 . 1) 개인면접 Q1 사전조사서에 이순신장군의 리더십을 보고 적용해보려는 노력을 했다고 적혀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가 있습니까 ? A1 대학 동아리 회장을 맡아 주점을 기획했었는데 참여율이 저조했습니다 . 저는 인형탈을 쓰고 호객을 하는 방법 , 앰프와 마이크를 빌려 노트북을 연결해 노래방 기계를 만들자는 등 참여 의욕을 높일 아이디어를 제시해서 참여를 유도해낼 수 있었고 주점사업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었습니다 . Q2 의욕과 사기를 돋워주었다는 말씀이군요 . 알겠습니다 . 그럼 이순신장군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이순신장군에게 답답했던 점은 없었습니까 ? A2 예 영화 드라마를 보면서 결단력과 구국 정신에 감동은 많이 했지만 답답했던 부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 Q3 그럼 선조 임금의 말에 그대로 다 따르는 모습에서는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 A3 그 부분은 이순신장군의 의지대로 전투를 진행했다면 더 효율적으로 전투를 치렀을 수도 있었겠지만 , 국가에 충성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이 이순신장군의 가치관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 Q4 알겠습니다 그럼 최근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 A4 최근에는 스트레스 받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 Q5 그럼 어느 때 스트레스를 받나요 ? A5 저는 시간약속을 어기는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 Q6 만약 상관이나 어른이 약속을 어긴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 A6 제가 마땅히 공경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참고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 Q7 상관이 부당하거나 위법한 지시를 한다면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 A7 단순히 부당한 지시라면 망설이지 않고 따르겠습니다 . 하지만 명백히 법에 반하는 지시라면 정중히 말씀드리고 따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Q8 복면 금지법 도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A8 헌법에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있지만 복면은 군중심리를 일으켜 위험한 상황을 만들 소지가 있기 때문에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Q9 그럼 집회인들의 권리는 어떻게 보장하죠 ? A9 복면금지법 세부 조항중에 성매매를 업으로 삼거나 성적 소수자들에게는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조항이 존재하기 때문에 충분히 보장된다고 생각합니다 . 면접관님 : 시간이 다됐네요 나가보셔도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 단체 면접 : “ 이상입니다 ” 를 말 끝에 붙이라는 옵션이 있었습니다 . Q1 안락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각각 찬성 반대의견을 한명씩 말해보시길 바랍니다 . A1 안락사는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의 가족들까지 극심한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상입니다 . Q2 그럼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죠 ? A2 살아날 가능성을 사전에 철저히 살피고 정말 가능성이 없다고 검증된 사람에 한해 실시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상입니다 . Q3 경찰과 검찰이 시민의 행복을 위해 어떤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 A3 수사권 조정을 통해 시민분들이 이중수사를 받는 일이 없도록 조치한다면 시민분들이 좀더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상입니다 . Q4 봉사활동 경험이 있습니까 ? A4 많은 봉사활동 중 강화도에서 편부모 고아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일 선생님이 되어 캠프를 진행했던 봉사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 캠프 마지막날 아이들이 저를 안고 울면서 엄마 아빠를 보고싶다며 울었었는데 , 제가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 이제 경찰관이 되어서 그 아이들을 가족처럼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습니다 . 이상입니다 . Q5 가족내에서 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하고 딸은 아버지 처벌을 거부하고있습니다 신임 경찰관으로써 어떻게 조치하시겠습니까 ? A5 이 사건은 4 대악 중 가정폭력과 성폭력 두 가지에 모두 해당하는 중대한 범법행위이기 때문에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피해 아이의 말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진지하게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 공감해주고 ...... 죄송합니다 이상입니다 . Q6 국가관을 말씀해보세요 A6 몸과 마음을 다해서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헌신하자는 것이 저의 국가관입니다 . 면접관님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 본인의 국가관을 실천하면서 봉사하는 경찰관이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 6. 마음이 나태해질 때마다 상상만 해도 눈물이 차오르는 , 공부를 해야 하는 절실한 이유를 떠올렸습니다 . 저희 아버지는 제철소 회사원입니다 . 아주 어릴 때 아버지 회사에 견학을 간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의 부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 나중에 알고보니 아버지의 부서는 쇳물이 폭포처럼 쏟아져나오는 용광로 근처로 , 해마다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위험구역이었고 , 먼 발치에서 견학조차도 할 수 없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었습니다 . 지금 제 아버지는 52 세이시지만 60 세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 속 모습보다도 더 깊은 주름살이 새겨져 있고 , 안전모를 매일 오랜 시간 쓰신 탓에 머리카락도 많이 남아있지 않으며 , 개중에서도 검은 머리카락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 하지만 아버지는 그 열악한 곳에서 일하시면서도 30 년동안 단 한번도 힘들다는 말씀 없이 밤낮이 바뀌는 교대근무를 해오셨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들어오실 때는 항상 웃으면서 돌아오셨습니다 . 그렇게 힘들게 버신 귀중한 돈을 본인에게는 거의 투자하지 않으셨지만 제 학비에만큼은 아낌없이 쏟으셨습니다 . 저도 그런 사실을 알기에 동네에 입소문이 날 정도로 피나는 노력을 할 수 있었고 특목고인 자율형 사립고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 하지만 자사고의 실력자들 사이에서 높은 내신을 따내기는 힘들었고 , 대입에 꼭 필요한 수리 가형 성적이 잘 나와주지 않았습니다 . 결국 2010 년 6 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수리가형 역대 최하등급을 받았고 , 이렇게 낳아줘서 너무 미안하다는 말씀과 함께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 어머니께서 이런 말을 하게 만든 건 크나큰 불효라고 생각했고 , 저는 이런 결과가 어머니의 탓이 아니라는 걸 반드시 증명해야 했습니다 . 다른걸 다 망치는 한이 있어도 수학만은 잘 보자는 각오로 미친 듯이 수학만을 공부했고 , 수능날엔 아니나 다를까 다른 과목은 골고루 점수가 떨어졌지만 수학만은 그 어떤 모의고사에서 받았던 점수보다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 이렇게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피땀어린 지원과 치열한 노력덕택에 , 원하는 대학교에 1 차 정시전형으로 1 명의 대기자 없이 최초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 제 노력을 지켜봐 오셨던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기뻐하셨고 , 직장 동료와 상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직장생활을 하셨습니다 . 이렇게 영혼까지 짜내어 힘들게 진학한 대학이었습니다 . 그렇게 진학한 대학을 버릴 것을 각오하고 경찰을 하겠다고 하니 당연히 아버지께서는 크게 노발대발 하며 반대하셨습니다 . 대학을 어떻게 갔는데 위험한 경찰을 하려고 하느냐 그 대학 가려고 공부하는데 들인 노력이나 시간이 아깝지도 않느냐 아들이 그 대학에 들어간게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아느냐고 말씀하시면서 말입니다 ... 물론 저는 수능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 경찰만큼 보람된 직업이 또 없는 것 같다고 , 꼭 경찰관이 되고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아버지는 그날 이후 며칠동안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고 , 저도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 아버지의 완고한 뜻을 결국 꺾었기에 당연히 학비는 지원해주시지 않을 줄로 알았습니다 . 하지만 아버지는 경찰공부에 필요한 학비까지 선뜻 지원해주셨고 , 아버지의 뜻을 꺾고 시작한 도전인 만큼 단 한번의 실패 없이 한번에 합격하자 ,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말자는 각오를 가지고 공부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첫 응시임에도 불구하고 공부시작 7 개월만에 필기 조정 72 점으로 합격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 아버지께는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사실 제가 경찰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하루라도 빨리 공무원이 되어서 아버지께서 언제든 그 힘든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는 그 선택지를 내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 가족을 위해서 평생을 바쳐 헌신해 오신 아버지를 그런 환경에서 계속 일하시도록 더 이상 내버려 두고싶지 않았습니다 . 저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아버지는 나를위해 30 년을 참고 희생해오셨는데 나는 고작 1 년도 참지못하는가 자책하고 용광로 옆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 그때마다 저는 눈물을 한 번씩 닦고 ,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 7. 생활 1) 자세 앉아있는 시간이 13 시간을 항상 넘다 보니 허리가 굉장히 아팠습니다 . 그래서 허리가 아플 때가 되면 방바닥에 엎드려서 공부를 하고 , 엎드려 있다가 가슴이 답답해지면 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자세를 계속 바꿔주면서 공부했습니다 . 누우면 잠이 오기 때문에 어떤 자세든 약간은 불편한 자세가 집중력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 2) 헤드셋과 이어폰의 선택 인강 몰입을 위해 음질을 최대한 좋게 보려고 헤드셋을 사용했는데 , 여름에도 하루에 6 시간을 넘게 끼고 있다 보니 헤드셋이 닿는 부분에 피부 트러블이 엄청나게 생겼습니다 . 헤드셋을 벗고 그냥 노트북 자체 사운드로 들으니 몰입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결국 여름에는 이어폰을 쓰게되었습니다 . 여름에 헤드셋은 정말 좋지 않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 3) 산책 밥을 먹고 바로 앉거나 엎드려서 공부를 하니 소화도 안되고 속이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 그래서 매 끼니 후마다 아파트 옆 공원을 두세바퀴 걸어다니며 공부했던걸 생각해보고 들어와서 공부를 계속했더니 속도 많이 진정되고 바깥 공기도 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4) 잠 공부를 첫 시작한 2 주일간은 욕심이 지나쳤던 나머지 하루에 20 시간씩을 공부했습니다 . 그 생활이 일주일을 넘어가다 보니 코피가 터지기 시작했고 정신이 혼미해지며 밤낮이 바뀌는 등 생활이 불규칙해지고 말았습니다 . 결국 하루 밤과 낮을 꼬박 새고 밤 10 시까지 참다가 잠을 청하는 방법으로 생활패턴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었고 , 그날 이후로 잠은 항상 9 시간 이상을 챙겨서 잤습니다 . 그랬더니 깨있는 시간동안 졸음이 쏟아지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 시험 임박이 아니라면 잠을 줄이는건 정말 어리석은 짓인 것 같습니다 . 5) 책과 눈의 거리 공부를 하려면 책이나 인터넷강의를 굉장히 오래 보고 있어야 하는데 , 각자의 눈에 맞는 책과의 거리를 잘 찾아야 되는 것 같습니다 . 제 시력은 좌우 나안 1.5 로 굉장히 좋은 편입니다 . 그런데 공무원 서적 특성상 빼곡한 페이지를 보는 일이 많아 처음에는 1 시간도 못가 초점이 흐려졌고 눈을 찌푸려야만 겨우 글자가 보이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 안약을 넣어도 초점이 빠르게 회복되지 않았고 , 눈을 20 초정도 감고 있다가 떠야 겨우 초점이 회복되곤 했습니다 . 하지만 거리를 약간씩 조절해서 보기 시작해서 최적의 거리를 찾은 이후에는 3 시간이 지나서야 초점이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 내 눈에 맞는 책과의 거리를 찾는 것과 , 적절히 눈을 잘 깜박여 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 이 글을 읽는 모든 경찰수험생분들께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아래는 제가 공부한 책들과 , 필기 성적표 , 그리고 최종 합격자 공고문입니다 .